<p>어린 시절부터 노인정에는 집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드리고 집에 인접한 고아원에는 어린나이에도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과 놀아주고 씻겨주고 겨울엔 개울가에서 얼음물 손시러운 줄 모르고 빨래해주고 해질녘엔 집에 돌아오면 왜? 그리 제 마음이 뿌듯하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였는지 모릅니다. 그리 저희 가정이 부유하고 넉넉한 삶이 아니어도 남을 돕는 일들이 마냥 저를 행복하게 하였습니다. 이 때부터 꿈이 꼼지락꼼지락 하였나 봅니다.<br />저는 26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.. 29살인 저희 남편과 1996년에 한 살림을 시작하여 신랑이 갖어 온 월 30만원으로 당차게 살림을 하며 하루 천원으로 생활하며 신랑을 공부를 시켰습니다. 11년이란 공부가 끝난 뒤 신랑의 꿈인 사회복지사로 현재 8년째 사회복지현장에서 장애인과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..</p><p>어느 날 신랑이 모아 놓은 퇴직금으로 너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라는 겁니다.. <br />전 제 생애에 저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는게 믿겨지지 않았습니다.. 주부들은 다 그렇듯 ,<br />자신에 것에 5000원 쓰기가 쉽지는 않잖아요.. 저는 그 동안 신랑 몰래 “사이버대학”들을 누리꾼처럼<br />이리 비교 저리 비교하며 끝내 저의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대학을 찾았습니다.. <br />“세계사이버대학” 신랑한테는 말을 못하고 한 해 한 해 보내었는데 신랑이 “너도 공부시작해봐!~”<br />정말 전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.. 그러나 그 당시 11월이라 12월을 고대하며 하루하루 세계사이버대학을 방문하고 신인생모집을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. 드디어, 세계사이버대학에서 문을 활짝 열어 정말 부푼 가슴을 안고 설레임으로 들어섰습니다.. 모든 절차를 정말 친절히 상담해주 던 학교측에 감사를 드리는 순간, 신랑 회사에서 퇴직금은 퇴직해야만 나온다는 설명을 듣고 학비를 어찌해야 하나 싶었습니다.. 학교 창에 대출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적혀 있었습니다.<br />혹시나 싶어 학자금 대출창구에 상담을 하고 빠른 응대가 왔어요.. 대출된다고 ~ 감사했습니다.. <br />정말, 꿈을 이룰 수 있구나! 꿈은 꾸는 자만이 이루는구나! 저는 학자금 대출로 4번을 받게 되었습니다. 지난 1학기는 무이자로 혜택을 받다가 어제는 문자로 2008년과 2009년 하반기 이자를 통장에 입금했다는 학자금대출담당자에게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..</p><p>정말, 학교에서는 소액 장학금과 대출 또한 15년 상한인데 지난 학비 이자까지 내 주는 것 보며 또 하나의 선물을 받고 꿈은 환경이 막는 것이 아니고 꿈은 돈이 막는 것이 아니고 꿈은 사람이 막는 것이 아니고 바로 꿈을 이룰 수 없도록 본인 자신이 장애물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..</p><p>제가 세계사이버대학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 또한 2년전 생활과 변함이 없었을 겁니다..<br />그러나, 저는 현재 꿈을 이루는 여자가 되었습니다. 졸업예정자인 저는 남편과 같은 사회복지일을 하려고 합니다.. 저희가 살고 있는 인근 지역에 장애인 주간보호센타를 설립하려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.. 이 글을 지금 쓰는 이순간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 의논하며 첫 발을 디딜 산지(땅)를 보고 있습니다. 졸업식때는 사무장이 되어 있지 않을 까 합니다.. 원장은 신랑이구요!!<br />정말 행복합니다. 이 행복을 이룰 수 있도록 꿈을 갖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또한 나와 같이 이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함께한 세사대 졸업생 및 재학생이 있어서 힘이났습니다. 어릴 적 고아원과 노인정이 놀이터였던 것처럼 마지막 인생 멋진 놀이터에서 장애우와 고아와 어르신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학업에 창을 열어준 남편과 세사대에 감사를 드립니다. <br />남편과 세사대 사랑합니다. 정말 꿈은 꾸는 자가 이룰 수 있습니다.. </p>
|